셀리히만은 24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왕복 상자(shuttle box)에 넣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제1 집단의 개에게는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훈련을 시켰다(도피 집단). 제2집단은 코로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고, 몸이 묶여 있어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훈련을 받았다(통제 불가능 집단). 제3 집단은 상자 안에 있었으나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다(비교 집단).
24시간 후 이들 세 집단 모두를 다른 상자에 옮겨 놓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앞서와는 달리, 상자 중앙에 있는 담을 넘으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과연 모든 조건의 개들이 전기충격을 피할 수 있었을까?
실험 경과 전기충격 도피 훈련을 했던 제1 집단과 전기충격 경험이 전혀 없었던 제3 집단은 중앙의 담을 넘어 전기충격을 피했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 집단에서 훈련을 받은 제2집단은 전기충격이 주어지자 피하려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낑낑대며 전기충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왜 통제 불가능 집단에서 훈련받은 개들은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달아나지 않았을까? 이미 훈련 과정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음을 학습했기 때문에 도망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무력감을 학습하고 통제력을 상실함으로써 절망에 빠져버린 것이다.
[출처]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 - 셀리히만의 학습된 무기력 실험|작성자 양병훈
인간에게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되는 '학습된 무기력'현상은,
(형제에 관해 내려오는 속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형만한 동생 없다'는 속담.)
내가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나도 경험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이론이다.
반면에 상대방에게 무기력을 학습시킬 수 있다면 언제까지 쉽게 이길 수 있는 게임을 반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군대에서 많이 경험할 수 있다... 전경들도 거의 마찬가지로 학습당하는 걸로 알고 있다. 전경들이 최루탄 물대포를 쏘더라도 그들을 욕할 일이 아니란 뜻이다. '이 명령은 부당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거다. 그들은 시키니까 하는 것이고 때론 시킨 이상을 할 수도 있다. 그 상황에 서지 않는다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겠지만 '명령과 복종'의 관계를 학습하고 나면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무서운 것은 그 '명령과 복종'을 학습하고 나서야만 이 사회의 남자로서 대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 무력감을 철저하게 학습하고 실천한 사람이 군대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 'A급'이 되고 그 A급들은 물대포를 수직으로 내리꽂고, 유모차 부대를 보고도 물러서지 않으며 가끔 시키지도 않은 짓을 '센스있게' 잘 해낸다. 그래야만 A급이고 이 사회에서 귀여움을 받는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신념따윈 길바닥에 묻어버리는 것도 A급이 되고 싶다면 껌뱉듯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내 우려와는 다르게 전역과 동시에 저 복종심은 잊게 된다 ㅡ '머리로는'. 그렇지만 몸에 배인 습관이란 것은 쉽게 지우기 힘든 것이다. 그리고 2년간 학습한 무기력은 윗사람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해준다. 고엽제 피해 전우회가 이명박이 시키지 않은 짓 ㅡ 촛불집회 반대 집회라거나 가스통에 불을 붙이고 MBC로 돌진한다거나 ㅡ 을 잘 하는 것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고엽제를 맞아가며 학습한 '명령과 복종'의 작용도 있으리라 믿는다. 그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베트남으로 가서 무기력을 학습했을 따름이다.
'우리 모두는 피해자다'라는 식의 논리를 펴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서로를 향해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전경들은 우리의 분노를 받을 대상이 아니고, 고엽제 피해 전우회는 우리의 손가락질을 받을 대상이 아니다. 우리가 정작 분노해야 할 집단은 따로 있다.
주 열사로 대표되는, 매일 수십만 명씩 몇달간 동원할 수 있는 어떤 배후세력이 있다고 믿는 ㅡ 저런 세력이 있었다면 국회의사당에 당신들의 자리는 없었을거란 걸 모르나 ㅡ 모 당, '버스요금이 한 70원하나'라고 묻는 정 모씨가 있는 모 당, 구국의 일념으로 일어섰다는 대통령 삼수 실패생 이 모씨가 있는 당... 이렇게 해야 한다는 둥 저렇게 해야 한다는 둥 뭔가를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그들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이 개탄받아 마땅하다. 지금 이 땅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ㅡ 지나치게 낙관적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폭력진압을 하는 전경들도 (특히 이명박 대통령은 더더욱!) 비폭력, 무저항시위를 이끌어내며 시민의식 발전에 이바지 하고 있다고 믿는다 ㅡ 그것이 무엇이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배후세력이 어쩌니하는, 말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혼나야 한다.(나를 비롯해서...)
전경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는 변명을 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이들은 변명거리도 없고 그들이 숨을 구멍을 허락해줄 자비심 많은 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