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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에 가까운 책임감

여기 사람들은 제시간에 출근하지 않는다.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다들 아르바이트생이기 때문이고 둘째로 일찍 와서 그다지 할 일도 없는데다가 셋째로 다들 걸어서 출근하기 때문이다. 네번째로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랑 다들 나이차이도 한두살 밖에 안나고 다섯번째로 그 책임자가 그다지 깐깐하게 말하는 타입이 아니며 여섯번째로 책임자도 자주 지각하기 때문이다.


근데 나는 지각할 이유가 위의 여섯가지에다가 집이 멀다는 좋은 핑계까지 있음에도 매일 10~15분, 빨리는 30분가량 일찍 온다. 새벽네시반에 집에 기어들어갓다가 두시간자고 다시 나올 적에도 10분 빨리 와서 앉아있었고 경희대 친구집에서 꽤나 방탕한 밤을 보내고 두시넘어서 잤을때에도 혼자 유유히 일어나서 샤워하고 출근했을 때도 20분 빨리 와서 앉아있었다.


뭐 회사가면 당연한 일이고 자주 있는 일이겠지만 이건 아르바이트인데다가 위의 여섯가지 이유가 더 있기 때문에 딱히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여기는 늦잠을 자서 전화할때까지 일어나지도 못하다가 늦게 와서 별 미안해하지 않는 친구도 있다. 나도 그렇고 다들 그냥 늦었네할뿐. 시급도 그대로 받는다.


시간약속에 민감한 때문이냐면 다른 시간약속은 주로 먼저 나가 기다리는 편이지만 그건 할일이 없는 때문이니까 그건 아닌거 같다. 그 이유도 약간은 있겠지만 다른 이유를 찾자면 쓸데없는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해야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면 쓸데없는 책임감을 잔뜩 안고 전전긍긍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좋은 일이기는 한데 그게 실제 일처리가 꼼꼼한 것과는 연결되지 않는 단점도 있다.
 

아무튼 영재형은 내가 책임감있는 편이라며 그게 의외로 큰 장점이라고 했다. 아마 그때 내가 진로상담을 요청했을 때라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정도면 나는 책임감을 느끼는 편이라고 하는게 맞는 것같다. 당시에는 나도 잘 모르던 성향이었는데 그건 내가 나에대해서 잘 모른다기보다 내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그때 나는 '그정도 책임감 없는 사람도 있어요?'라고 물었고 영재형은 '열라많아;;;'라고 했다.


역시 직장생활을 해본 것과 안해본 것의 차이는 크구나 싶었는데 정작 이런 장점은 직접 일을 시켜보거나 누군가의 추천서가 없다면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내세울 것이 못되는 것 같다.


ps. 지금 근무중인데 이거 쓰고 있는건 뭐냐면 내가 맡은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