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old post

초등학생식 일기 두번째

새벽 두시 사십칠분쯤 잠들었는데 부대에서 전화가 와서 깼다.

여덟시 반쯤인가.
사실 내가 집에서 받을 전화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받아야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어 받았는데 역시나였다.
다시 자기도 뭣해서 그냥 일어난 김에 아침먹고 활동을 시작했다.
점심때 뭔가 약속이 있었던 듯한 기분이 들어 영화하나보고 나가려 했으나
영화를 보다 보니 시간이 좀 기리기리(아슬아슬이란 일본어)해서 반만 보고 관뒀다.

아오이 유우가 나오는 영화 몇개 더볼려고 그랬는데 나갈일이 생겨서 어쩔수 없었다.
사실 안나가도 그만이었던 걸까나... 하긴 내일 복귄데 집에만 있기도 좀 그렇다.
이번 휴가때 느낀건데, 휴가라고 해서 딱히 꼭 만나야될 누군가가 있지 않은 거 같다.
앞으론 휴가도 잦고, 누구여야 한다는 건 여자친구도 아닌 이상 별로 의미가 없으니까.
아무튼 약속은 잡아놨으니 나가야지 별수 있나.

최대한 꾸무적거리다가 기리기리한 타이밍에 나가려 했으나
지갑을 어디뒀는지 찾느라 한바탕 난동을 피웠다.
집에 혼자 있었기 때문에 엄마랑 형한테 전화도 하고 그랬다.
아 늦었다 싶어서 에라 늦자 하니까 너무도 뻔한 위치에서 지갑이 혀를 차고 있었다.
정리정돈하는 습관이 필요한 걸까나 싶었지만
집에 내 공간이 없었기에 어쩌면 한번쯤은 일어날 법한 일이었다.

버스가 참 안온다.
날씨는 화창하고... 신기한게 군대에선 같은 날씨를 '덥다'로 표현하게 된다.
더운 것과 추운 것만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마음이 황량해서인가.
휴가때 20장정도만 찍었으면 한롤뽑고 사진 가지고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왠지 찍을 마음이 들지 않아 그만둬 버렸다.
찍고 싶지 않다.
'내가 속하지 않은 사회엔 내가 애정을 가질만한 것들이 없으니까 당연한 거다.'
따위 문장만들기 놀이 하기 좋아하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신촌에 도착해서 공중전화로 이우현을 부르고 박호은과는 저녁약속으로 옮기고 했다.
공중전화란 다른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늘 그러듯 의외로 매력있다.
이우현을 기다리면서 전역하면 수신전용전화기같은거 들고 다닐까 하다가
(왜냐하면 아예 없으면 엄마가 나의 행방을 무척이나 찾을 테니까)
400일이나 남은 일을 생각하면 뭣하나 싶었다.

이우현을 만나고 맛의 진미에서 어중간한 맛의 부대찌개를 먹고
반년만에 만났지만 여전히 무신경함을 느끼면서
밥먹고 그냥 헤어지기 뭣하므로 위닝을 했다.
완전 깨졌지만 난 언제나처럼 심드렁했다.
완전 민간인 마인드다. 전투력따윈 찾을 수가 없다.
이우현은 날 만나면 알수없는 편함을 느낀다고 했다.
여자가 아니라서 아쉽구나하는 시큰둥한 생각을 했지만
이우현이 나름대로 칭찬했는데 찬물 끼얹지 않으려고 말하진 않았다.

과방에서 죽좀치려고 백양로를 뽈뽈거리면서 올라갔다.
가다가 이우현이 김은정과 김재학이란 지네만 아는 이를 발견했다.
짐짓 떨어져서 걸은 담에 이우현이 그네들과 인사하는 걸 보고 있으니까
이우현이 김은정에게 내가 있음을 인식시켜주고 그제서야 김은정은 나를 발견했다.
역시 오늘은 자기 생일임을 다시 말하며 선물을 달라고 했다.
커피한잔 뽑아주마하곤 김재학이란 지네만 아는 이와 인사를 하고(왜)
같이 과방까지 갔다.
김은정에게
생일이라고 학교에서 어슬렁거리면 별일 있을거 같냐는 둥의 농담을 하며
500원짜리 캔커피를 주장하는 김은정에게 200원을 쥐어주고 가버릴까 하다가
마침 주머니에 백원주화 다섯개가 짤랑거렸으므로 17차를 뽑아주며
몸좀 가벼워지라고 했다.

과방엔 정지윤이 있었다.
결국 만날인간 다만나는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고
주접을 떠는 정지윤에게 몇마디 했으나 씨도 안먹혀서 괜히 김은정에게 집에나 가라고 했다.
정지윤도 한번 만났어야했는데 여자애들이랑 일대일로 만나는 건
자금의 압박이 심한데다(왠지 내가 내게 되므로)
투자대비 별로 유쾌하지도 않다는 걸 저번 휴가때 느꼈기에 이제 안하기로 했다.

옆에 같이 있던 유기림에게 전날밤부터 품었던 의문점에 대한 해답을 듣곤
역시 별거 아니었음에 나직한 한탄을 하고 잘가라고 했다.
둘은 김은정에게 종이를 잘게 찢어 뿌려주면서 생일축하한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조롱이었다.
(그에 앞서 김은정은 둘에게 생일축하 문자를 보낼 것을 독촉했고
정지윤은 김은정의 전화번호도 몰라서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해프닝도 있었다.)

뭔가 얄팍하기 그지없음을 느끼고 어느샌가 들어와있는
박호은에게 저녁먹으러 갈 것을 독촉해 밥먹으러 갔다.
뭔가 당초 계획보다 멤버가 많았지만 별로 중요친 않았다.
대학생활에 계획대로가 어딨단 말인가.

프리챌 마스터가 되어 있는 이선영에게 마스터의 역할 수행에 대해
금쪽같은 조언들을 하려고 했으나 별로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고
생각해보니 금쪽같은 것도 별로 없었다.
왠지 나보다 잘할거 같아서 약간 우울해지기도 했으나
뭐 어차피 사소한 일이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웃기기만 할 뿐이어서
뭔가 이제 나도 불꽃5반을 벗어나고 있는 중인가 싶었다.

집에 돌아오는데 버스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의사들이 말이야 보건 복지부가 잘못한거라고 그러니까 서울에 경찰청장이 31명이고
구청장이 25명인데 보건 복지부가 어쩌고 저쩌고 끝도 없었다.
처음엔 내쪽에서 안보이는 반대편에 핸즈프리같은 걸 써서 전화를 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뭔가 시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대단한 이야기일까 싶어서
귀기울이고 있다가 잠들었는데 깨어났을때도 여전히 아저씨는 중얼거리고 있었다.

뭔가 억울한 사정이 있는건가 아니면 그냥 미친건가 싶었는데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이제좀 그만하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하고 있기 때문에
미친건가보다 했다  침을 잘못 맞은건가 했다.

돌아오는 길에 복귀할때 챙길 것들을 살려고 둘러봤는데
도무지 뭘 챙기려고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그냥 들어왔다.
도무지 뭘 챙기려고 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도무지 뭘 챙기려고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무지 뭘 챙기려고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
.
.

어쩐지 이런 식으로 써놓으면 뭔가 있어보일까 했는데 역시 표절이다.
뭘 베낀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