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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스물두살에도 사춘기

난 스무살이 넘어서도 가끔 내가 아직 덜 자랐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읽었을 때 그랬고,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을 때가 그랬고
무라카미 류의 <69>을 읽었을 때가 그랬다.


홀든 콜필드[각주:1]는, 늘 거친 말들만 내뱉는다. 스스로 가진 것은 없고, 정작 학교에서 쫓겨나서 집으로 가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인 주제에 반드시 차가운 말들을 내뱉는다. 한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그중에는 다리를 꼬고 있는 여자도 있었고, 꼬지 않고 있는 여자도 있었다. 보기 좋은 각선미를 가진 여자가 있는가 하면, 형편없이 못생긴 다리를 가진 여자도 있었다. 숙녀처럼 보이는 여자도 있었고ㅡ 창녀처럼 보이는 여자 등 각양각색이었다. ...아마 대부분은 멍청한 녀석들과 결혼을 하겠지. 언제나 자기 차가 휘발유 1갤런에 몇 마일이나 달릴 수 있다고 떠벌리곤 하는 녀석들이나, 탁구나 골프를 치다가 지기라도 하면 어린아이처럼 화를 내는 놈들이나.비열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과 짝이 되겠지. 또는 평생 가야 책 한장도 읽지 않는 놈들에, 정말 지겹기 짝이 없는 자식들과 말이다.


나도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왜인지 모르게도 나는 늘 불만투성이었다. 남들은 지옥이라는 고3때도 꿋꿋하게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다니고, 공부하고, 적당한 성적을 내면서도 늘 불만을 가지지 않았었는데, 대학을 가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뿐이었었다. 저 책을 읽는 순간까지도 나는 하찮은 독설들에 공감하고 동감했을 뿐, 그에게 문제가 있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도 홀든 콜필드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어렵지 않게 난 홀든과 날 동일시 할 수 있었다.

나에겐 모두 하찮은 것들이었다. 학점이니 토익이니 이중전공이니 간지스펙이니 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고 그것들에 목매는 일이, 아니 쫓아다닌 다는 사실 자체가 날 '지겹기 짝이 없는 자식'이 되게 하는 것 같았다. 하는 것에 비해 하지 않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난 그들보다 나은 인생을 살 자신이 있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저 변명들이 한낱 사춘기시절의 자기합리화으로 들릴 뿐이지만, 그렇다고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아니면 아직 내가 사춘기거나.




물론 저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무라카미 류가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라는
무척이나 편리하고, 그럴듯하며
적당히 윤색해서 분위기 잡고 말하면 된장삘까지나는
변명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난 변명들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누가 날더러 변명들에 빠져산다고 해도 반박하지 못할 거다.
그렇다고 해도 난 류가 나에게 가르쳐 준
'권력의 앞잡이들에게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인
그들보다 즐겁게 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진 않을 거다.

스물두살에도 사춘기이면 어때?
아니 평생을 사춘기로 살면 어때?
그들을 '정말 지겹기 짝이 없는 자식'들로 취급해 버리면 그만인데.



...까지만 썼다면 일년 전 얘기고,
이제 나에게 이 글은 '그냥 글'일 뿐이다.
  1.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