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이었던가 주간지였던가에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 소개를 봤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이 싫어서,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남들이 말하는 것이 싫은 것도 내가 책을 읽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다.
물론 상대방이 그 책을 읽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경우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느 구석에서는 껄끄러운 마음이 남아있는 것을 경험한다.
영화, TV드라마에 대해선 "나 그거 안봤는데"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서
(심지어 태극기 휘날리며, D-워, 실미도, 살인의 추억 같은 '국민영화'들에 대해서도!!)
모르는 책, 제목만 들어본 책 이야기가 나올땐 한없이 작아지는 이유는 뭘까.
이 책도 뭐, 예고편이 다인 한국영화처럼 서평이 다인 책이겠지만
제목을 보고 끌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합뉴스(08. 02. 21)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영문학과 교수가 '햄릿'의 텍스트를 읽어본 적이 없으며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 '햄릿'만 봤다고 털어놓는다면?. 그가 정말로 햄릿을 안 읽었다고 믿는 사람보다는 그가 굳이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책 읽는 문화가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교양인'의 필수덕목으로 불리는 현실에서 책읽기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대화에서 언급되는 책들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거나, 얘기만 들었거나, 대충 읽었거나, 읽었는데도 내용을 거의 잊어버린 경우의 '죄책감'과 '수치심'은 누구나 경험한다. 그래서 "당신 이 책 읽었어요?"라고 묻는 것은 지식인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다.
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펴냄)에서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만이 자기 진실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책을 읽지 말라고 조언하는 책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저자는 안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들려주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책 읽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찾아갈 수 있는 책을 골라 읽는 기쁨을 이야기한다.
로베르트 무질이 쓴 소설 '특성없는 남자'에 나오는 도서관 사서 이야기는 비독서인에게는 위안이 된다. 350만권이 쌓인 도서관의 사서는 "카탈로그만 본다"며 "책의 내용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도서관에서 일하긴 글러먹은 사람이오! 그는 절대로 총체적 시각을 가질 수 없단 말입니다"라고 강변한다.
폴 발레리가 책 안 읽기의 대가였다는 것도 재미있다. 그는 책에 파묻혀 산 아나톨 프랑스를 '책벌레'라고 놀렸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죽자 "설령 내가 그의 방대한 저작을 단 한 줄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드나 도데처럼 서로 전혀 다른 정신의 소유자들이 그의 중요성에 관해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의혹을 떨쳐버리기에는 충분하다"고 뻔뻔스럽게 평론을 썼다.
저자는 움베르토 에코가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연쇄살인의 도구로 설정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등 실제로 읽은 사람은 별로 없지만 엄청나게 인용되고 있는 고전에 대해서는 "꼭 읽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일찌감치 버리라"고 조언한다. 저자는 펼쳐보지도 않은 책에 대해 강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고백하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에서 해방돼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조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