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나카 요시키 지음, 윤덕주 옮김/서울문화사 |
오늘은 은하영웅전설이란 소설. 문장이 아름다운 그런 소설은 아니다. 중학생도 읽을만큼 쉽게쉽게 짧게짧게 쓴 문장들의 나열. 다나카 요시키는 청소년 대상 소설작가로도 유명하다나. 얼핏 흔한 판타지소설같은 문체와 분위기. 더불어 촌티날리기 그지없는 '등장인물 소개'에 할당된 세 페이지. 옛날 책이라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걸. 91년쯤에 에 내가 읽은 몇몇 반공소설이 오버랩되어서 더 얄팍한, 그냥 읽고 던지면 좋을 것 같은 느낌. 이 책이 뭐가 아쉬워서 10만원주고도 못구한다고 난리들인가. 어쨌든 샀으면 읽어야지. 얀 웬리라는 나약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약하기 그지없다. 이상은 있지만 가야할 현실은 최악. 자기가 꿈꾸는 이상론, 역사론을 궁시렁 거리면서 결국 최악을 걷는다. 전략적인 전쟁 ㅡ 말하자면 이길 준비를 다 해둔 싸움, 이길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둔 싸움 ㅡ 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으나 정치적 여건상 원하지 않는 싸움터에 끌려나가서 뒷수습하고, 지는 싸움 도중에 맡고 하는 전술적인 싸움만 하면서도 천재적 재능(본인은 정석에 충실 한 것이라고 하지만)으로 드라마틱한 승리를 이끌어내 연전연승. 삼십대 초반의 나이로 국가원수의 자리까지 오른다. 늘 싸우고 있으면서 틈만나면 은퇴하고 싶다고 궁시렁댄다. 이상이 없는 인간이 어딨을까마는 그래도 주인공이라면 으레 꿈속에서 살며 이상을 따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들이게 마련인데. 얀 웬리는 그러지가 못하다. 모든 시국을 꿰뚫는 통찰력과 대중적 인기, 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결국 이것이 문제) 은하제국 황제도 부럽지 않을 권력을 누릴 수 있건만 늘 당하기만 한다. 권력이 무섭단 이유로. 알지만 할 수 없는 것. 어딘가에서 본 글에 쁘띠부르주아인 자신과 얀 웬리를 비유한 글이 참 시의 적절하단 생각이 든다 ㅡ 은하영웅전설을 처음 접한 것도 그 글이다 ㅡ 알기 때문에 안하고는 못 배기는 척 달려드는 것(하지 않아야할 입장인줄도 모르고)과 해야한다는 것을 가슴이 아프도록 느끼면서도 자기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 간극을 절묘하게 비집고 들어가 이쁘게 재단한 글이었다. 그런 글을 쓸 능력이 있었으면 하다가 한숨을 쉬었더랬다. 아무튼 얀 웬리는 그런 아픔을 가진 나약한 캐릭터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온 이순신도 따지면 그런 '얀 웬리적'캐릭터다. 노무현은 <칼의 노래>를 추천하면서 자기의 그런 캐릭터성을 은연중에 내비쳐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칭찬하고 싶은 정치적 수완이다. 묘점은 이런 캐릭터(얀 웬리만큼 쓸 캐릭터가 여럿 더 나온다)들과 정치극의 스케일, 그리고 이것들을 '우주력 790년대' 라는 SF적인 분위기에 녹여 우의적으로 현대인에게 우리네 정치의 아픈 면을 폭로하는 다나카 요시키의 독설과 필력이다. 더불어 화려한 전술들은 옵션이랄까. 결국엔 나폴레옹이나 클라우제비츠 등의 전술들을 베낀 것이라지만 작가는 얀 웬리 의 입을 빌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정석적인 전술'이라고 말하고 있는 만큼 베꼈단 말은 흠집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 누군 은하영웅전설 서평좀 써달라고 청탁받아 하기싫어하기싫어하며 일처럼 쓴 글에서도 미친듯한 붉은 심장의 향기가 나는데 누군 좋아서, '쓰지않으면 배길 수 없어서' 쓴 글에도 향기는 커녕 싼티가 난다니 우울한 일이다. |
http://wnsgml.com2007-10-27T06:33:5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