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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자는 왜 이명박을 지지하는가?

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박노자 교수가 한겨레21에 쓴 칼럼의 제목이기도 하고, 강준만 교수도 그 글을 읽고 같은 이름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상은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서 본 것이다 http://blog.aladdin.co.kr/mramor/1633324)

박노자 교수는 자영업자와 70년대 향수를 그 원인으로 들었고, 강준만 교수는 높은 대외의존도와 '쏠림현상'을 들었는데, 읽을 적에 매우 흥미 있게 읽었다. (제목부터 자극적이지 않은가)

마는, 최근 알게 된 책을 보면, 아마 몇백자 정도 칼럼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yes24에서 가져온 책 소개를 옮겨 놓고, 다음에 기회되면 책을 사서 읽기로 했다. 저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이 문제란다. 더불어 저자의 다른 저서인<프레임 전쟁>도 염두에 두기로 했다.




 평범한 서민들이 보수 정당에 투표할까? 한국의 경우도 그러하고 미국의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를 보아도 노동계급에 유리한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가치관, 동일시의 대상으로 선택한다. 진보진영은 선거유세 기간동안 보수진영의 실책에 관한 사실들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선택할 것이라 믿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생각의 틀’이 사실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었는가이다.

이 책의 제목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는 저자가 대학에서 ‘인지과학 입문’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내주는 과제에서 비롯되었다고한다. 그 과제는 바로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그러나,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 코끼리를 떠올려야 한다. 따라서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한다. 미국 민주당 지지 세력에게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주의 세력의 프레임을 모두 전복할 것을 권유하는 내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 정치를 분석하고 미국 민주당의 승리 전략을 논한 책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문제의식과 분석의 틀은 우리에게도 꽤 재미있고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왜 평범한 서민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가 하는 의문과 그 해답을 중심으로, 일상 언어와 정치의 관계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선거철이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계급적 이해관계나 정치 성향이 아니라 ‘지역감정’으로 투표하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지역색에 따라 선택한 당에 그동안 거듭 실망하고 분노했으면서도, 막상 선거 때가 되면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들 사람은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유권자들은 과연 이익을 좇아 표를 행사하는 것일까?

상대적으로 지역감정에 얽매이지 않은 지역을 들여다보면 의문이 더욱 커진다. 이를테면 한나라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을 정치 기반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고용 안정보다 기업 활동의 자유를, 분배와 지속 가능한 성장보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통한 가시적인 성장을 추구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오지의 농촌에서도, 대규모 공업 단지가 들어선 지역에서도, 서울의 영세 상가 지역에서도 선거에 이긴다. 한때 노동 운동의 성지라는 칭송을 듣고, 전국 최초로 노동자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선출했던 울산에서도 보궐선거에서는 노동자 후보를 외면했다(2005년 9월 민주노동당 울산 북구 국회의원 조승수 의원직 상실, 10월 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윤두환 당선). 이 사실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이야기하는,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와 자연스레 겹쳐진다.

2003년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공화당 후보로 주지사 선거에 나와 승리했다. 당시 캘리포니아의 노조들은 현임 주지사였던 그레이 데이비스(민주당)가 아널드 슈워제네거보다 서민과 노동자에게 훨씬 유리한 태도를 취한다는 것을 적극 홍보했다. 그러나 “데이비스와 슈워제네거 중 어느 편이 더 당신에게 유리합니까?” 하는 질문에는 거의 대부분 데이비스라고 대답했던 노조원들이, 그런데 누구에게 투표할 예정이냐고 묻자 슈워제네거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공화당이 표방하는 가치 체계는 ‘엄격한 아버지’ 모델로 정리할 수 있다. 세상은 위험하고 살기 힘든 곳이며, 아이들은 원래 나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선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엄격한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는 권위자로서, 어머니와 자녀에게 바른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다.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려면 고통스런 체벌을 통해 규율을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규율을 잘 터득한다는 것은 세상에 적응해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는 말과 같다. 선한 사람은 규율을 잘 터득해서 성공한 사람이고, 성공이 첫째가는 도덕이다. 선한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사회 복지를 시행하는 것은 악이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을 빼앗아 스스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규율을 잘 터득해서 열심히 일하면, 선한 사람이 받아야 마땅한 성공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진보 진영이 표방하는 가치 체계는 ‘자상한 부모’ 모델이다. 세상은 비록 험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은 곳이고, 노력하면 더 나아질 수 있다. 아이들은 선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부모는 아이들의 선한 본성을 북돋아 주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책임이 있다. 부모는 자녀를 자상하게 보살피고, 자녀 역시 다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 따라서 첫째가는 도덕은 ‘보살핌’이다. 보살핌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공감, 곧 타인을 헤아리고 돌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 곧 나 자신과 내가 돌보는 타인을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엄격한 아버지’ 모델의 가치관과 ‘자상한 부모’ 모델의 가치관을 동시에 가지고서, 처지와 상황에 따라 둘 중 어느 한쪽을 작동한다. 자상한 부모 모델의 가치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도 수동적으로나마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이해한다. 때로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 자상한 부모식 정치관을 가진 학자가 제자들에게는 엄격한 아버지처럼 돌변하는가 하면, 소외 계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집안에서는 엄격한 아버지로서 권위를 누리기도 한다. 자상한 부모 세력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자상한 부모 모델을 선택하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자상한 부모 모델을 선택하게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이 이 책 속에 들어 있다.


ps. 어김없이 이번 총선에서도 진보진영은 참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