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과 비정규직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로버트?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무슨 일이에요?" 아내가 말했다. "괜찮아."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이제 눈을 감아보게나." 맹인이 내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가 말한 대로 눈을 감았다.
"감았나?" 그가 말했다. "속여선 안 돼."
"감았습니다." 내가 말했다.
"계속하게나." 그가 말했다. "멈추지 마. 그려." 말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했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직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에 딱 붙어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이제 된 것 같은데. 다 그린 것 같아." 그는 말했다. "한번 보게나.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조금만 더 계속 그렇게 있어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어때?" 그가 말했다. "보고 있나?"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_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Cathedral) 이라는 단편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맹인 로버트는 아내의 친구인데, 내가 아내와 결혼하기 이전부터 친하던 사이다.
나는 그가 달갑지 않았지만 아내의 친구였기 때문에 그의 방문을 모른척 할 수 없었고
생전 처음 만나는 맹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식사 후 아내가 잠든 사이에 TV를 보던 나는 맹인에게
TV에 나오고 있는 대성당의 모습을 설명하기 시작했고
맹인은 설명을 듣다가 대성당의 모습을 함께 그려볼 것을 제안한다.
둘은 손을 잡고 대성당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와 맹인은 눈을 감은 채 대성당 그림을 완성한다.
말로는 누구나 쉽게 내뱉고 쉽게 잊어버리는 연대, 공유, 배려같은
싸구려 감정이 아니라, 완전히 단절된 두 사람을 하나로 잇는
나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작업을
카버는 단 삼십페이지짜리 단편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_학교 곳곳에는 비정규직 경비분들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 서명운동, 자보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오늘 정말정말정말 우연찮게 아저씨와 함께 청소를 하고 같이 이야기도 하며
다음에 핸드폰에 mp3넣는거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어쩌면 값싼 우월감이겠지만 전 연대생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그들' 중 몇명이나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나 하고 다닐까하고 궁금해졌다.
<대성당>을 열번도 더 읽었지만 오늘 본 <대성당>은 좀 길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