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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과 이명박
wnsgml
2008. 10. 9. 21:40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재미있는 구절이 나온다. 재미있다 못해 약간 섬칫하기도 했던 구절인데, 처음 읽었을 때 멋진 문장이라고 생각했었던지 메모해둔 흔적을 오늘 발견했다.
읽자마자 전에 읽었던 칼럼이 생각났다.
김현진이란 분이 쓴 시사인(08. 06. 17)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몰아내자>라는 칼럼이다.
당시엔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김현진도 아마 데미안에서 영감을 얻은게 아닐까 싶다.
고전이란 건 언제 어디서나 자체발광이다.
이미 시선이 굳어져 못보는 것들도 많지만 그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건 지켜보고 있건 늘 빛나고 있다.
다시 한 번 무엇인가 정말 근사한 생각 혹은 죄 많은 생각이 떠오르거든, 싱클레어, 누군가를 죽이거나 그 어떤 어마어마한 불결한 것을 저지르고 싶거든, 한 순간 생각하게. 그렇게 자네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는 것은 압락사스라는 것을! 자네가 죽이고 싶어하는 인간은 결코 아무 아무개 씨가 아닐세. 그 사람은 하나의 위장에 불과할 뿐이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읽자마자 전에 읽었던 칼럼이 생각났다.
김현진이란 분이 쓴 시사인(08. 06. 17)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몰아내자>라는 칼럼이다.
당시엔 연결시키지 못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김현진도 아마 데미안에서 영감을 얻은게 아닐까 싶다.
(전략)
그는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실로 운명적인 대통령이다. 온갖 불가사의한 어두운 그림자를 끌어안은 그에게 너끈히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것은 진짜로 경제를 살릴 줄 믿었던 국민도 아니고, 극렬 보수 지역 사람도 아니고, 그날 나 몰라라 투표 용지를 외면하고 놀러 가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범인은 우리 안의 속물성이다. ‘내 아파트 값도 좀 확 뛰었으면’ ‘우리 아이는 자립형 사립고에 가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면’ ‘나도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이명박처럼 한가락하고 싶다, 아니면 내 자식이라도’ 하는 속물스러운 욕심, 저마다의 속물성이 이명박 대통령이 갖춘 온갖 속물성에 감응한 것이다. 그는 남녀노소 전 국민의 속물성을 자극할 만한 속물 판타지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속물은 그 자신만 알 뿐 누구의 편도 아니다
고학생에서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성공한 기업인, 아들을 히딩크와 함께 사진 찍게 해주는 아버지, 딸에게 건물 하나 안겨서 월세 받아먹고 살게 해주는 자상한 친정 아버지, 아내가 몇 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다니다 사진 찍혀서 구설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재력가 남편,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럭셔리한 취미생활. 우리는 이런 힘센 그와 한편이라 믿고 싶었고 그가 누리는 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 소망이 마침내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다. 속물은 결코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을, 속물은 오로지 그 자신만의 편이라는 것을.
거리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퇴진을 외치기 전에 먼저 숨통을 끊어놓아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이명박’이다. 우리 안에 한 명씩 가지고 있는 음습한 이명박, 그를 먼저 끝장내야 한다. 100만명 아니 1000만명이 촛불을 들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저 컨테이너 철옹성 안에 있는 진짜 이명박이 퇴진할 확률은 제로다.
고전이란 건 언제 어디서나 자체발광이다.
이미 시선이 굳어져 못보는 것들도 많지만 그들은 우리가 보지 못하건 지켜보고 있건 늘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