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승자독식사회
wnsgml
2008. 4. 1. 19:50
<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 웅진지식하우스 2008
승자독식시장은 소수, 1%의 승자들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시장을 말한다. 최고의 가수들 몇몇만 있어도 그들의 음원을 하나 더 생산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 비해 근소한 차이로 열세를 보이는 가수들에게 투자할 투자자는 없어진다. 때문에 승자들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챙기고, 패자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명해야 하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승자가 얻어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다수의 패자들은 그 꿈을 더욱 키워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수천만 달러를 버는 메이저리거들을 보며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얼마나 그 꿈에 근접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파악할 수 없다. 패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사는 것은 젊은이가 가지기에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거가 되고 몇년이 지나서야, 천만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많지 않다.
물론 패자들이 갖는 것은 적은 돈일지라도, 그들은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많은 수의 그들은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어렵게 살기'와 '조금 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더 잘 살 수 있는 일' 사이에서 선택할 기회를 어린 시절에 박탈당한다.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어쩌면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들이 강요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야구를 하는 탓에 사회가 잃어버리는 기회비용은 매우 크다. 천명이 육상선수를 하나, 열명이 육상선수를 하나 100m 금메달리스트는 한명 뿐이다. 그리고 990명이 다른 일을 할 때 그들과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는 아니다.
경쟁이 더 나은 상품을 만드는 것은 진리에 가까운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경쟁이 상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에서 한계에 맞는다. 그러나 경쟁이 과열될수록 승자가 가지는 메리트는 커지고 더 많은 사람은 패자가 되고 만다. 개인이 승자독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빠져든 개인을 구할 수 있는 수단도 이 사회는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가 많이 드는 예가 스포츠산업이지만, 스포츠 외에도 승자독식시장은 곳곳에 있다. 언젠가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르는 책을 쓰는 작가들, <뉴욕 타임즈>에 매주 실리는 15편의 서평에 속하지 않는다면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힘들다. 그들에게 작품 외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 시장이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학벌시장. 수능점수 몇점 차이로 대한민국 1%계층이 결정된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승자독식시장은 만성적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 대학은 더 우수한 교수진을 모으고, 우수한 교수진은 더 우수한 학생들을 부른다. 내 이야기만 하더라도, 내가 부산대학교에 갔더라면, 전액장학금을 4년 내내 받았겠지만 나와 우리 부모님은 사립대학교 등록금에다가 서울 유학이라는 추가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사회가 승자독식사회임을 염두에 두지 않은 '합리적 경제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내 선택이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비웃을 사람은 이 사회에 많지 않다.
읽는 내내 나를 우울하게 만들던 저자는 책 말미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 승자독식시장의 승자도 결국엔 그리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인데, 이런 걸 위로랍시고 하는 저자가 우습기도 했지만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 그와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생각에 먹먹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며칠 전에 이 책을 읽고 있다는 포스팅을 했는데, 꽤 빠른 시간에 평을 쓰게 되었다. 실은 중간에 제목만 읽었어도 충분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도 제법 있었지만, 읽어나가던 와중에 리뷰를 쓸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읽어나가니 몇자 적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원저 The winner-take-all society 는 1995년에 나온 책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예로 든 것들이 현시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스포츠 스타들로 패트릭 유잉, 앙드레 아가시 같은 선수들이 나오는 정도고 Microsoft와 인텔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독식을 말하면서 MS-DOS를 예로 들고 있는 부분에선 심히 한숨이 나왔다. 그럼에도, 2008년의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그 승자독식사회화가 더욱 급격히 진행되었다는 것은 주지해야 할 사실이다. 이 책을 13년이나 지난 이제서 번역한 역자나 펴낸 출판사에서도 염두에 둔 부분일 것이다.
원저 The winner-take-all society 는 1995년에 나온 책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예로 든 것들이 현시성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스포츠 스타들로 패트릭 유잉, 앙드레 아가시 같은 선수들이 나오는 정도고 Microsoft와 인텔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독식을 말하면서 MS-DOS를 예로 들고 있는 부분에선 심히 한숨이 나왔다. 그럼에도, 2008년의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그 승자독식사회화가 더욱 급격히 진행되었다는 것은 주지해야 할 사실이다. 이 책을 13년이나 지난 이제서 번역한 역자나 펴낸 출판사에서도 염두에 둔 부분일 것이다.
승자독식시장은 소수, 1%의 승자들이 모든 것을 차지하는 시장을 말한다. 최고의 가수들 몇몇만 있어도 그들의 음원을 하나 더 생산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 비해 근소한 차이로 열세를 보이는 가수들에게 투자할 투자자는 없어진다. 때문에 승자들은 천문학적인 액수를 챙기고, 패자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연명해야 하는 것이다.
불행한 것은 승자가 얻어가는 것이 많아질수록, 다수의 패자들은 그 꿈을 더욱 키워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수천만 달러를 버는 메이저리거들을 보며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나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얼마나 그 꿈에 근접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파악할 수 없다. 패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사는 것은 젊은이가 가지기에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거가 되고 몇년이 지나서야, 천만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때 그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많지 않다.
물론 패자들이 갖는 것은 적은 돈일지라도, 그들은 야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많은 수의 그들은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어렵게 살기'와 '조금 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더 잘 살 수 있는 일' 사이에서 선택할 기회를 어린 시절에 박탈당한다.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강요한 것도 아니지만(어쩌면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들이 강요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한 야구를 하는 탓에 사회가 잃어버리는 기회비용은 매우 크다. 천명이 육상선수를 하나, 열명이 육상선수를 하나 100m 금메달리스트는 한명 뿐이다. 그리고 990명이 다른 일을 할 때 그들과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는 아니다.
경쟁이 더 나은 상품을 만드는 것은 진리에 가까운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경쟁이 상품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어느 정도에서 한계에 맞는다. 그러나 경쟁이 과열될수록 승자가 가지는 메리트는 커지고 더 많은 사람은 패자가 되고 만다. 개인이 승자독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도, 빠져든 개인을 구할 수 있는 수단도 이 사회는 가지고 있지 않다.
저자가 많이 드는 예가 스포츠산업이지만, 스포츠 외에도 승자독식시장은 곳곳에 있다. 언젠가 베스트셀러가 될지도 모르는 책을 쓰는 작가들, <뉴욕 타임즈>에 매주 실리는 15편의 서평에 속하지 않는다면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힘들다. 그들에게 작품 외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 시장이 온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학벌시장. 수능점수 몇점 차이로 대한민국 1%계층이 결정된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도 승자독식시장은 만성적이다. 저자가 설명하는 미국의 아이비리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 대학은 더 우수한 교수진을 모으고, 우수한 교수진은 더 우수한 학생들을 부른다. 내 이야기만 하더라도, 내가 부산대학교에 갔더라면, 전액장학금을 4년 내내 받았겠지만 나와 우리 부모님은 사립대학교 등록금에다가 서울 유학이라는 추가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사회가 승자독식사회임을 염두에 두지 않은 '합리적 경제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내 선택이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비웃을 사람은 이 사회에 많지 않다.
읽는 내내 나를 우울하게 만들던 저자는 책 말미에서 희망적인 메시지를 준다. 승자독식시장의 승자도 결국엔 그리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인데, 이런 걸 위로랍시고 하는 저자가 우습기도 했지만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것이 그와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는 생각에 먹먹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