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 걱정하는 부자들
새 정부는 출범 전부터 까이기 시작했다. 요즘 주간지나 신문을 보면 장관들 문제로 말잔치를 벌이는 데, 언론의 자유가 살아있다는 것을 즐거워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정부가 노골적으로 썩었음을 개탄해야 하는 것인가 혼란스럽지만 경제만 살리면 되니까 걱정할 것이 안된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경제 성장률 7%는 꿈이다, 6%도 어렵다, 5%도 쉽지않다고 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잃어버린 10년간 우리나라는 4~5% 성장률을 이어왔다.) 성장이 안된다면 분배라도 잘 해야 할 것인데, 새 내각의 장관들을 보면 물음표를 붙일 수 밖에 없다. 저런 사람들이 서민경제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다음은 아래 칼럼을 읽기 전에 알아야 할 망언들.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
"친척이 김포 근처에 사는데 좋은 땅이 나왔기 때문에 사라고 권유해 구입했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는 줄 몰랐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
이춘호 전 여성부 장관 후보자
"서초동 오피스텔은 내가 유방암이 아니라는 검사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사준 것이다." "일산 오피스텔은 친구에게 놀러 갔다가 사라고 해서 은행 대출 받아 샀다"
이명박 대통령
"평소 라면을 먹지 않는 계층은 라면 값 100원이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지만 라면을 많이 이용하는 서민들에게는 라면 값 인상이 큰 부담을 준다"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표절이 아니라 열정"
남주홍 전 통일부 장관 후보자 "부부 교수가 30억원이면 양반"
유인촌 문화부 장관 "배용준은 그보다 더 많지 않느냐" (그의 재산 신고액은 140억원)
경향신문(08. 03. 06) [이대근칼럼] 라면값 걱정하는 부자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용기있는 고백으로 이끌었을까. ‘나는 땅을 사랑할 뿐이다’. ‘사랑은 무죄’라는 관습법이었을까.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은 없다는, 도저한 낭만주의였을까. 사랑은 아름다운 죄라서 용서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까. 아니면, 땅을 사랑할 줄 모르는 서민들을 일깨우려는 충정이었을까. 부자들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어떤 남편은 암에 걸리지 않았다고 오피스텔 한 채를 아내에게 선물한다. 어떤 아버지는 수석입학 한 딸이 성적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국적을 포기하게 한다. 그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이 유별난 사랑만이 아니다.
부부교수가 25년간 30억원 버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는 식의 독특한 관점, 여의도가 사람살기에 좋은 곳이 못된다는 남다른 주거관념도 그들을 특별하게 한다.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구멍가게로 달려가는 어린이처럼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친구가 사라고 하는 바람에 오피스텔 한 채를 샀다는 동심의 소유자도 있다. 그들은 35만원짜리 비눗갑, 4000만원짜리 붙박이장이 있는 오피스텔을 가진 진정한 부자이지만, 의외로 싸구려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놀랍게도’ 1억, 2억원짜리 싸구려 골프회원권을 갖고 있는 이도 있고, 한 해 혹은 두 해마다 전세 월세를 옮겨 다니는 서민보다 더 딱하게도 여름과 겨울철마다 옮겨 살아야 하는 처지에 있는 이도 있다.
- 몸에 밴 부유함 드러낸 장관들 -
그들이 솔직한 성격이라서 이런 부자의 생태를 공개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말실수로 그랬을 리도 없다. 그럴 듯하게 거짓말하거나 임기응변하는 재주가 없어서 그랬던 것도 아닐 것이다. 그들의 몸에 밴 부자로서의 생활습관은 한 마디를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꾹꾹 눌러 감춘다 해도 그들의 부유함과 그 부유함에서 묻어나오는 남다른 생활방식의 노출은 그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무작정 비난해서는 안된다.
사실 딸의 스트레스 원인을 한국인이라는 사실에서 찾든 말든, 아내에게 오피스텔 한 채를 선물하든 말든, 계절에 맞게 여름집·겨울집을 바꿔가며 살든 말든, 자기 딸은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고 우기든 말든 신경 쓸 게 없다. 서민들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일이다. 그게 부자들이 사는 법이려니 하고 가볍게 넘기면 그만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면 설사 그들이 잠시 보통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해도 어지러워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 바라건대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은 서민과 깊숙이 관계맺어야 하는 운명이다. 국무위원이자 장관인 이 부자들은 자신의 삶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서민을 위해 일하고, 자신의 고민거리도 관심사도 아니었던 문제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명박이 대통령으로서 첫 국무회의에서 이 부자들에게 민생을 챙기라고 지시함으로써 이 사태는 분명해졌다. 그들은 이제 라면값 100원 인상의 고통을 체감하지 못하면 상상력을 발동해서 이해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서민들은 그들의 인생과 무관한 부자들의 말이라고 한쪽 귀로 듣고 다른쪽 귀로 흘려보낼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부자들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이명박은 서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갖고 있다. 부자정부 이미지가 부담스럽다면 ‘서민 대통령’만한 보호막이 없다. 선거 때 시장통 아주머니·할머니가 이명박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며 서민 좀 먹고 살게 해달라고 호소하던 장면이 아직 생생하다. 사실 많은 서민이 자기의 꿈과 소망을 성장을 기반으로 한 경제살리기에 걸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제 와서 7%성장은 이룰 수 없는 꿈이고, 6% 성장도 어렵다고 고백했다. 총선은 눈 앞에 있는데 5% 성장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것이 이명박이 부자 내각에 민생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배경이다.
- 서민 고통 해결사 맡긴 부조화 -
우리는 곧 이들이 서민을 위해 애쓰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좋다. 부자들이 서민을 위해 잘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라면 값 100원 인상문제를 왜 35만원짜리 비눗갑을 쓰는 이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건지. 왜 가난한 이들은 자기의 슬픔과 분노와 고통과 꿈을 부자들에게 의탁해 풀려고 하는지. 왜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는 이렇게 어긋나고야 마는지. 이 부조화, 어긋남이 목엣가시처럼 불편하다.(정치·국제에디터)